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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리뷰] 미드소마 (2019) - Ari Aster

by 멜로우 문 2025. 2. 28.

미드소마

낮의 공포, 아리 애스터의 햇빛 악몽

'미드소마'는 '유전'으로 충격적인 데뷔를 한 아리 애스터(Ari Aster)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전통적인 공포영화의 문법을 뒤집는 과감한 시도를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공포영화가 어둠 속에서 공포를 찾는 것과 달리, '미드소마'는 스웨덴의 한여름 백야 축제를 배경으로 끊임없이 내리쬐는 햇빛 아래에서 서서히 전개되는 악몽을 그려냅니다.

영화는 가족 비극으로 깊은 트라우마를 겪는 대니(플로렌스 퓨)가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잭 레이너)과 그의 친구들과 함께 스웨덴 시골마을 홀가의 하지 축제에 참가하면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인류학적 연구와 문화 체험으로 시작된 여행이 점차 기이하고 잔인한 의식들로 가득 찬 악몽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애스터 감독은 밝은 태양 아래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의식들을 통해 공포의 미학적 가능성을 확장시키며, 시각적으로는 아름답지만 내용적으로는 충격적인 대비를 만들어 냅니다.

 

미드소마

심리적 트라우마와 공동체의 이중성

'미드소마'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개인의 트라우마와 이를 치유하는 공동체의 이중적 역할입니다. 영화는 대니가 가족을 잃은 후 겪는 극심한 슬픔과 고립감으로 시작됩니다. 크리스티안과 그의 친구들은 대니의 감정적 필요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의 고통을 불편한 짐처럼 취급합니다. 반면, 홀가 공동체는 대니의 감정을 인정하고 공유하며, 특히 집단 애도 장면에서 대니의 슬픔을 함께 느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적 연대는 동시에 섬뜩한 조작과 통제의 수단이 됩니다. 홀가 공동체의 따뜻한 환대와 포용 이면에는 냉혹한 폭력과 희생의 의식이 숨겨져 있습니다. 애스터 감독은 이를 통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소속감과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어떻게 조작되고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대니가 마침내 '5월의 여왕'으로 선택되어 미소 짓는 마지막 장면은 그녀가 진정한 치유를 얻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트라우마적 결속에 갇혀있는지에 대한 모호한 결말을 제시합니다.

 

미드소마

의식과 상징으로 가득 찬 민속 공포

'미드소마'는 북유럽 민속 전통과 의식에 대한 세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민속 공포(folk horror)' 장르의 현대적 걸작입니다. 영화 속 홀가 마을의 의식과 상징들은 실제 북유럽 전통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애스터 감독의 상상력으로 재해석되어 더욱 기괴하고 의미심장한 형태로 표현됩니다.

영화는 룬 문자, 벽화, 계절 의식, 음식, 의상 등 풍부한 시각적 요소를 통해 홀가 공동체의 신화적 세계관을 구축합니다. 특히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벽화는 이후 전개될 사건들을 암시하는 일종의 스토리보드 역할을 하며, 관객들에게 불길한 예감을 안겨줍니다. 또한 약물로 인한 환각 장면들은 헨릭 롬베르그의 환상적인 촬영과 결합하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대니의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를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홀가 마을에서 행해지는 '아테스타파'(노인 절벽 투신), '메이퀸' 선발 의식, 그리고 마지막 화형식은 모두 생명의 순환과 공동체의 갱신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애스터 감독은 이러한 의식들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상실된 공동체적 의례와 신화적 세계관에 대한 향수와 공포를 동시에 불러 일으 킵니다.

 

미드소마

관계의 해체와 새로운 가족의 발견

'미드소마'는 표면적으로는 이교도 공동체에 관한 공포영화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깨어져가는 관계와 새로운 가족을 찾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관계는 영화가 시작될 때부터 이미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크리스티안은 대니를 떠나고 싶지만, 그녀의 가족 비극 이후 죄책감으로 관계를 지속합니다. 그들의 관계는 냉담함, 무관심, 그리고 진정한 소통의 부재로 특징지어집니다.

홀가 마을에서의 경험은 이미 균열이 생긴 그들의 관계를 완전히 해체시키는 촉매제가 됩니다. 크리스티안은 점점 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며, 대니는 점차 홀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합니다. 결국 크리스티안이 의식적인 '연애 마법'에 의해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게 되고, 대니가 이를 목격하는 장면은 그들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대니는 크리스티안을 포함한 9명의 희생자를 불태우는 의식의 결정권자가 됨으로써, 자신을 억압하고 무시했던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선택을 합니다. 그녀의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는 공포스러우면서도 일종의 해방감을 담고 있으며, 트라우마와 상실로 점철된 여정이 마침내 일종의 카타르시스에 도달했음을 암시합니다.

 

'미드소마'는 시각적 아름다움과 심리적 공포, 민속 전통과 현대적 관계 문제를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입니다. 애스터 감독은 공포의 형태를 확장시키며, 단순한 충격이나 놀람 이상의 지속적이고 싶은 불안감을 관객에게 선사합니다. 빛으로 가득 찬 이 악몽 같은 여정은 공포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장르 영화가 어떻게 복잡한 인간 심리와 관계의 역학을 탐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탁월한 예시가 됩니다.